자금사정이 안좋아지면 사람들은 돈보다 사람을 먼저 정리합니다. 빌려달란 말을 못 해서 연락을 피하고, 괜찮은 척하다 멀어집니다. 돈은 다시 벌어도 그때 끊긴 사람은 잘 돌아오지 않습니다. 돈과 관계에 대해 오래 지켜보며 든 생각을 적었습니다.
처음에는 모임에 안 나갑니다. 회비가 부담스럽고, 밥값을 나눠 낼 자신이 없으니까요. 그다음에는 연락을 피합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라는 안부에 “그냥 뭐”라고 답하고 대화를 서둘러 닫습니다. 형편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과 거리를 두다 보면, 어느 날 정말로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전화할 사람이 없습니다.
저는 이런 장면을 오래 지켜봤습니다. 돈 문제로 무너지는 사람은, 돈이 없어서 무너지기 전에 사람을 먼저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괜찮은 척이 사람을 더 멀리 밀어냅니다
돈이 힘들 때 대부분은 티를 안 내려고 합니다. 친구 결혼식에 축의금이 부담스러워 안 가고, 명절에 조카 용돈이 걱정돼 발길을 줄입니다. 오랜만에 만나자는 연락에는 바쁘다고 둘러댑니다. 실제로 바쁜 게 아니라, 만나면 돈이 드니까요.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웃고, 별일 없는 사람처럼 지냅니다.
그렇게 괜찮은 척하는 동안, 주변 사람들은 정말로 내가 괜찮은 줄 압니다. 그래서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습니다. 정작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내가 만들어 둔 그 ‘괜찮은 얼굴’ 때문에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힘들다는 신호를 지우면 편할 것 같지만, 그 신호가 없으면 도와줄 기회도 선뜻 오지 않습니다.

빌려달란 말을 못 하는 마음
돈을 빌려달라는 말은 세상에서 제일 하기 어려운 말 중 하나일 겁니다. 그 말 한마디에 여러 감정이 얹혀 있으니까요. 미안함, 자존심, 거절당할 두려움, 관계가 어색해질 걱정.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 말을 삼킵니다. 그리고 삼킨 만큼 혼자 감당합니다.
그런데 그 침묵이 관계를 지켜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말을 안 하고 거리를 두는 사이, 상대는 이유도 모른 채 멀어졌다고 느낍니다. 나는 폐를 안 끼치려던 것인데, 상대는 버려졌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돈을 아끼려다 사람을 잃는 셈입니다.
빌려준 쪽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반대의 상황도 있습니다. 돈을 빌려준 사람은 그 뒤로 상대를 볼 때마다 그 돈이 떠오릅니다. 재촉하고 싶지 않아서 말을 아끼는데, 그 아낀 말이 쌓이면 어색함이 됩니다. 빌린 쪽은 미안해서 피하고, 빌려준 쪽은 불편해서 피하고. 그렇게 양쪽이 서로를 피하다 관계가 조용히 끝납니다. 돈이 오간 자리에는 자주 이런 침묵이 남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
제가 지켜본 바로는, 용기를 내어 “요즘 좀 힘들다”고 말한 사람에게 오히려 도움을 먼저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남의 어려움을 생각보다 흉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솔직함에 마음을 엽니다. 형편을 털어놓았다고 멀어진 관계보다, 그 말 한마디로 가까워진 관계가 더 많았습니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조용히 사라져 확실히 끊기는 것보다는, 한 번 말해보고 남는 사람을 확인하는 편이 낫습니다.
돈은 다시 벌 수 있습니다. 시간이 걸려도, 방법을 찾으면 회복됩니다. 그런데 그 시기에 조용히 멀어진 사람은 잘 돌아오지 않습니다. 돈보다 회복이 어려운 게 사람 관계입니다.
돈은 도구입니다. 도구가 잠시 부족한 것 때문에 사람을 잃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일입니다. 그런데 막상 그 안에 있으면 순서가 잘 안 보입니다. 당장 돈이 급하니 눈앞의 부담부터 줄이게 되고, 가장 줄이기 쉬운 것이 사람과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밥값, 축의금, 모임 회비. 사람을 만나는 데에는 늘 얼마간의 돈이 드니까, 돈을 아끼려면 사람부터 줄이게 됩니다. 그렇게 아낀 돈은 크지 않은데, 그렇게 잃은 사람은 큽니다.
그러니 돈이 힘들수록, 사람을 먼저 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다 털어놓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형편을 낱낱이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요즘 좀 힘들어서 연락이 뜸했어” 정도의 한마디라도, 조용히 사라지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관계를 끊는 것도 결국 나 혼자 내린 결정이니까요.
돈 문제는 언젠가 정리됩니다. 그 자리에 사람이 남아 있으면, 회복은 훨씬 수월해집니다.
돈이 없어질 때 먼저 사라지는 건 통장의 숫자가 아니라 옆에 있던 사람입니다. 숫자는 다시 채울 수 있어도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힘들수록 사람을 먼저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장지호 변호사(필명 장태풍) · 도산 전문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등록) · 법무법인 장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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