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하다 보면 컨디션과 상관없이 정신이 또렷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사람 앞에 앉아 이야기를 듣는 일이 왜 나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지에 대한 기록입니다.
아침부터 컨디션이 안 좋을 때가 있습니다.
몸이 무겁고, 말도 조금 느리고, 눈도 늦게 떠지는 날이 있습니다. 커피를 마셔도 정신이 또렷해지지 않고,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몸이 먼저 따라오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에도 이상하게 상담실에 들어가면 조금 달라집니다.

사람이 앞에 앉습니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몰라서 한참을 망설입니다. 핸드폰을 열었다 닫고, 봉투를 꺼냈다가 다시 넣고, “제가 정리를 잘 못해서요”라는 말을 먼저 합니다.
그때부터 정신이 돌아옵니다. 내 컨디션을 생각할 틈이 없어집니다. 상대가 어디서 막혔는지 봐야 하고, 지금 제일 급한 게 뭔지 들어야 하고, 말하지 못한 부분도 살펴야 합니다.
말은 빚 이야기인데, 듣다 보면 늘 생활 이야기입니다.
이번 달 월세를 낼 수 있는지.
가족에게 말해야 하는지.
카드값을 막으려고 또 다른 카드로 버티고 있는지.
통장에 돈이 들어오자마자 빠져나가는 게 무엇인지.
숫자만 보면 정리가 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숫자 사이에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상담을 하다 보면 몸이 늦게 따라와도 귀가 먼저 깨어납니다. 손이 메모를 하고, 머리가 순서를 잡고, 입이 묻습니다.

“지금 가장 급한 것부터 볼게요.”
“이건 오늘 바로 정리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당장 결론 내리지 않아도 됩니다.”
“생활비는 남겨야 합니다.”
이상하게 그때 제일 살아납니다.
평소에 늘 기운이 넘치는 사람이라서 상담을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컨디션이 좋아서 잘 듣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가만히 있으면 무너질 것 같은 날에도, 사람 앞에 앉으면 다시 또렷해집니다.
누군가 자기 상황을 꺼내놓는 순간, 그 이야기를 대충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상담실에 오는 분들은 대부분 잘 정리된 이야기를 가지고 오지 않습니다. 순서가 뒤섞여 있고, 금액이 헷갈리고, 어디서부터 망가졌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하다가 멈추고, 웃다가 갑자기 조용해지고, 별일 아닌 것처럼 말하다가 손끝이 굳어 있습니다.
그런 장면 앞에서는 나도 자세를 고쳐 앉게 됩니다.
잘해야겠다는 생각보다,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이 사람이 지금 어떤 말은 하고 있고, 어떤 말은 못 하고 있는지 봐야 합니다.
숫자로 정리되는 부분과, 숫자로는 아직 못 보는 부분을 나눠야 합니다.
저는 상담이 체력으로만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체력도 필요합니다. 지식도 필요합니다. 절차를 아는 것도 당연히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결국 사람 앞에서 살아나는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이 사람이 다시 버틸 수 있는 순서를 같이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상담이 끝나고 나면 종종 늦게 피곤해집니다.
상담 중에는 몰랐던 피로가 뒤늦게 옵니다.
그런데 그 피로가 싫지는 않습니다.
누군가의 망가진 이야기를 듣는 일은 가볍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이야기를 같이 펼쳐놓고, 오늘 당장 볼 것과 나중에 봐도 되는 것을 나누고, 조금이라도 숨 쉴 틈을 찾는 일은 해야 할 만한 일입니다.
상담을 할 때 제일 살아나는 이유는 아마 그 때문입니다.
나를 보여주는 시간이 아니라, 앞에 앉은 사람을 다시 보이게 만드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망한 이야기를 들고 온 사람에게, 아직 정리할 순서가 남아 있다는 걸 같이 확인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컨디션이 좋은 날만 잘하는 사람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람 앞에 앉았을 때 다시 정신이 돌아오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게 제가 이 일을 계속하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정리된 말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지금 가장 급한 일부터 남겨 주세요. 어디서부터 봐야 할지 함께 정리합니다.
장지호 변호사(필명 장태풍) · 도산 전문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등록) · 법무법인 장안
상담은 사진을 눌러 카카오톡으로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