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자리에 앉고도 정작 본론은 못 꺼내고 다른 이야기부터 하게 된 적이 있다면, 그건 준비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빙 둘러 가는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제가 그 안에서 무엇을 읽는지 정리했습니다.

큰맘 먹고 상담 자리에 앉습니다. 그런데 막상 입을 열면, 정작 하려던 말은 안 나오고 엉뚱한 이야기부터 시작됩니다.
오는 길이 멀었다는 이야기, 요즘 날이 덥다는 이야기, 일이 바빠 시간 내기 힘들었다는 이야기. 정작 빚이 얼마인지, 어디서부터 막혔는지는 한참 뒤에야 나옵니다. 머릿속으로는 본론을 꺼내야 한다는 것을 아는데도, 입은 자꾸 그 주변만 맴돕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뒤에 “왜 그 말을 제대로 못 했지” 하고 후회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둘러 간 것은, 준비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사람은 무거운 말일수록 빙 둘러 갑니다
가벼운 이야기는 바로 나옵니다. 어디가 맛집인지, 어제 무엇을 봤는지는 묻는 순간 술술 나옵니다.
그런데 무거운 이야기는 다릅니다. 입에 올리는 순간 그것이 진짜가 되는 것 같아서, 사람은 본능적으로 한 박자 미룹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말일수록 가장 늦게, 가장 빙 둘러서 나옵니다. 날씨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작 할 말이 너무 무거워서입니다. 둘러 가는 그 길이가, 그 말의 무게를 보여줍니다.
그러니 본론을 바로 못 꺼낸 자신을 답답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건 누구나 그렇습니다.

저는 그 둘러 가는 말에서 상태를 읽습니다
저는 상담에서 본론부터 다그쳐 묻지 않습니다. 둘러 가는 말을 끊지 않고 듣습니다. 그 안에 이미 많은 것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가장 오래 피하는지, 어디서 말이 빨라지고 어디서 느려지는지, 무엇을 말할 때 목소리가 잠기는지. 이런 것들이 정리된 진술보다 더 정확하게 그 사람의 상태를 알려줍니다. 어디를 가장 조심스럽게 도는지를 보면, 지금 무엇이 가장 무거운지가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빙 둘러 가는 말을 시간 낭비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 자체가 읽어야 할 정보입니다.
제가 하는 일은 깔끔하게 정리된 설명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흐트러진 말 속에서 지금 어디가 막혀 있는지를 함께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리해서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상담을 오시는 분께 정리해서 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순서가 엉켜도 됩니다. 본론부터 안 나와도 됩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부터, 지금 입에 올릴 수 있는 것부터 꺼내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듣다 보면 제가 함께 맞춰갑니다.
빙 둘러 가도 괜찮습니다. 그 길에서 제가 읽는 것이 있으니까요.

자주 묻는 질문
상담 가서 말을 조리 있게 못 할까 봐 걱정됩니다.
조리 있게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순서가 엉켜도, 본론이 늦게 나와도 괜찮습니다. 정리는 함께 해가는 것이고, 흐트러진 말 속에서도 충분히 읽어낼 수 있습니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해진 순서는 없습니다. 지금 입에 올릴 수 있는 것부터 꺼내시면 됩니다. 가장 무거운 이야기는 천천히 나와도 되고, 그 전까지의 말도 의미가 있습니다.
자료를 다 정리해서 가야 하나요?
다 갖추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엇이 필요한지는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정리하면 됩니다. 정리된 자료보다, 지금 상황을 함께 들여다보는 것이 먼저입니다.
마무리하며
상담 자리에서 본론을 바로 못 꺼내고 다른 이야기부터 하게 되는 것은, 준비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무거운 말일수록 사람은 빙 둘러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정리해서 말하려고 애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 입에 올릴 수 있는 것부터 꺼내시면 됩니다. 빙 둘러 가는 그 길에서도 읽히는 것이 있고, 나머지는 함께 맞춰가면 됩니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정리해서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 입에 올릴 수 있는 것부터 말씀해 주시면, 그 안에서 지금 어디가 막혀 있는지부터 함께 봅니다.
장지호 변호사(필명 장태풍) · 도산 전문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등록) · 법무법인 장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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